마음과 영혼이야기

임꺽정은 왜 의적이었는가

지공선사 2025. 11. 17. 16:34

조선의 3대 대도

조선 제13대 왕인 명종(明宗, 재위 1545∼1567) 때, 봉건적 수탈로 억압받는 백성들을 모아 관에 저항하며 싸웠던 백정 임꺽정(林巨正)이 있었다.

일제 때의 민족운동가이자 천재작가인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 1880~1968)는 이 임꺽정을 주인공으로 삼아, 조선일보에 10여 년에 걸쳐 당대 최대의 장편 역사소설을 연재하기도 하였다. 연산군 때의 서얼 출신인 홍길동, 숙종 때의 광대 출신인 장길산과 함께, 임꺽정은 흔히 조선의 3대 대도로 손꼽힌다.

  • 홍길동은 도를 닦아 약간의 신통력을 지니고, 결국 일본 오키나와로 떠나 율도국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 장길산은 끝내 잡히지 않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 그에 비해 임꺽정은 관군의 대대적인 수색 끝에 1562년(명종 17년) 황해도 구월산성에서 체포되어 죽음을 당하였다.

민초의 희망

임꺽정은 위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일개 도적도 아니다. 민초들의 아픔과 분노를 한 몸에 받아들여 경기도, 황해도, 강원도 일대에서 무리를 지어 관아를 습격하고 창고를 털어 헐벗은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도적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매우 용맹하여 토벌대와의 전투에서 크게 이기기도 하고, 감옥을 습격하여 동료들을 구해내기도 하였다. 지략도 뛰어나 부하들에게 미투리를 거꾸로 신고 다니게 하여 토벌대를 따돌리고, 양반 차림으로 관아를 드나들며 탐관오리를 농락해 민초들의 울분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명종실록에서 "나라에 올바른 정치가 없으면 가르침이 밝지 못하여 재상들의 횡포와 수령들의 사나움이 백성들의 살과 뼈를 깎고 피를 말려 손발을 둘 곳이 없고 호소할 곳도 없다. 추위와 굶주림이 절박하여 하루도 살기가 어려워서 잠시라도 연명하고자 도적이 된다. 도적이 된 원인은 정치를 잘못하였기 때문이지 그들의 죄가 아니다" (명종 16년 10월6일) 라고 하여 그만의 잘못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우리 가슴속에 의적(義賊)으로 살아 숨쉬는 그는, 잘못된 정치와 부패한 권력에 저항했던 민초의 희망이었다.

 

감악산에서 들려온 임꺽정의 소식

임꺽정을 만나보기 위해, 나는 먼저 생가터인 양주 불곡산을 들렀다가 그의 활동 무대였던 감악산으로 향했다. 산 전체가 어두운 빛을 띠고, 바위들은 감물처럼 회색빛을 띠고 있는 파주 감악산(紺岳山)은 그 바위의 기운 때문에 임꺽정의 마음에도 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을 것 같았다.


임꺽정의 영혼을 불렀더니, 그 당시 임꺽정의 이모 영혼이 대신 나타났다. 내가 몇 가지를 묻자, 임꺽정은 이미 천상세계에 가 있다면서 이야기를 짤막하게 들려준다.

“꺽정이는 자기 할 일을 다 한 겁니다. 꺽정이는 전생에 가난하게 살면서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도 하면서 천대와 멸시를 받았어요. 그런데 꺽정이는 본래 천상계의 마음을 지닌 아이였어요. 착하고 늘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했지요. 그러다 보니 금생에 자기 한을 풀면서 거기에 덧붙여, 자연히 배고프고 고달픈 백성들을 위하여 싸웠지요. 그래서 의적이라는 말이 맞기는 맞는 사실입니다. 할 말 다했으니 이만 물러갑니다.”

 

천상계의 마음, 덕(德)이 되어 길을 연다

임꺽정은 관병을 비롯해 못된 인간들과 싸우며 많은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살상하였지만, 그 영혼은 이 세계에 있지 않고 천상계(天上界)에 있다는 것을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천상계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으니 사후에 그곳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임꺽정으로부터 억울한 마음을 위로받고, 힘을 얻은 수많은 사람들과 영혼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하기 때문이다. 이 마음들이 모여 덕(德)의 힘이 생겨 당사자를 천상계로 안내한다. 천상계의 마음이란, 가난하고 멸시받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고 함께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다.

백성들을 한없이 사랑했던 신라의 선덕여왕이나, 빈민의 대부였던 제정구 선생도 역시 그 세계에 계신다. 살아서는 심신이 한없이 고달프지만, 사후에 이렇게 보답을 받게 된다. 반면, 이와 정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살아 생전에 호의호식을 누리고 마음대로 욕심을 부렸지만, 사후와 내생에서 큰 고통을 받는 것을 늘 보고 있다.

어쨌든 임꺽정이 좋은 세계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무척 마음이 편하였다. 왜냐하면 죽고 난 후 누구든 좋은 세계에 가는 것은, 그야말로 내가 바라는 좋은 일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