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영혼이야기

자해하는 청년을 구한 이야기

지공선사 2024. 4. 12. 11:48

30대 초반의 한 청년이 누나의 손에 이끌려 왔다. 수많은 빙의증세를 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복합적으로 겪고 있었다. 나날이 죽는 것보다 더한 지옥의 고통이었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자해증상이었다. 내게 온 날에도 팔뚝에 '죽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볼펜을 찔러대서 시커멓게 커다란 피멍이 들어있었다. 때로는 칼로도 자해를 하곤 하였다고 한다. 주로 뾰족한 물건이 자해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청년이 온갖 환청과 환시의 고통 속에서 잠깐 벗어나기 위해 이어폰을 귀에 끼고 염불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지공선사에게 가!" 하는 커다란 말소리가 염불 가운데 들려왔다는 것이다. 살려달라고 내게 매달렸다.

 

영시 해보니 젊은 여자귀신이 식칼을 들고 원한에 맺힌 무서운 표정으로 빙의하고 있었다. 이 총각이 1920년대에 전생에 강원도에서 군인이었을 때 그만 술을 마시고 성폭행한 뒤에 살해한 19세의 ooo라는 이름의 여인이었다. 원한이 극에 달해 이 총각에게 씌워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불어넣고 자해를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600년 전 서산에서 양반으로 지낼 때 노비들을 함부로 학대하고 임진왜란이 나서 피난할 때 집을 불태우고 노비들을 죽였다. 그 노비들이 한에 맺혀 복수하러 6명이 집단으로 달려들어 있었다. 이들이 주로 환청과 환시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한마디로 전생의 악행들에 대해 처절하게 과보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 생이 그 과보가 시작되는 생이었다. 앞으로 여러 생 동안 이런 고통을 반복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여기저기 유명한 곳에 다니면서 귀신들을 상대로 천도재나 굿이나 기도나 뭘 해도 소용없는 짓이 당연했다.

이 총각을 구해주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악업이 너무 큰 것에 비해 이제 막 과보를 받는 초기 단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적지에 생(生)과 사(死)라는 글을 앞뒤로 써서 신에게 결정을 청했다. 물론 내 마음대로 구해줄 수도 있지만 균형이 너무 어긋난 탓에 내가 개입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스스로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귀신들을 보면 복수하도록 내버려두고 내가 도저히 끼어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신에게 잠깐 기도한 다음 부적지를 허공에 던졌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보니 생(生)이 나왔다. 신이 허락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이 총각의 누나를 봐서 신이 허락해 준 것이다. 누나가 전생에 부처님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이 이대로 죽으면 못 산다고 사정하니 신인들 어쩌겠는가? 사실 수명이 한 달 남짓 남아있었다. 그래서 총각에게 살아나면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살 것을 말한 다음 이것을 신에게 약속한 후 귀신들 천도를 시작하였다. 성당에 다니고 있는 청년의 어머니도 같이 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렇게 죽은 처녀귀신은 이 세상에서 가히 가장 무서운 존재에 속한다. 이 총각을 죽이고 나서 지옥에 끌고 같이 들어갈 각오로 뭉쳐있는 상태였다. 한을 푸는 그 어떤 의식 따윈 무용지물이다. 왠만한 법문 역시 어림도 없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동원했다.

 

"이 놈을 죽여서 지옥으로 끌고 갈거야!" 음산한 목소리로 원한을 내뿜는다. 

 

"이 세상은 뺏고 빼앗고 죽고 죽이는 곳이다. 그대가 당한 불행은 그때 그 자리에 그 몸으로 있었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그럼 내가 잘못이란 말이야? 내가 전생에 악업을 지어서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야?"

처녀귀신이 되묻는다. 어디서 천도재를 지낼 때 주어들은 모양이다.

 

"아니지, 그대 잘못은 아무 것도 없어. 다만 내가 안타까운 것은 <그때>와 <그 자리>가 지저분해졌다는 것이지. 그대와 이 총각이 만남으로 인해서 말이야. 그대가 이 총각을 죽이고 지옥에 끌고 가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아. 그렇지?"

 

"흑흑흑..."

 

"너의 몸이 다시 깨끗해지고 싶지 않니?"

 

"나는 이미 더러워졌어. 다시 깨끗해지는 것은 불가능해!"

 

"아니야, 그 시간과 공간을 나와 함께 깨끗이 하게 되면 너의 몸은 금빛으로 빛날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네가 원하기만 하면 되지"

 

그리고는 귀신의 몸을 깨끗이 씻기고 분홍빛 한복으로 곱게 갈아입혀 주었다. 그리고는 그 끔찍한 자리로 순간 되돌아가서 그 자리를 깨끗이 정화시켰다. (천도재 중에 내가 과거의 시간과 차원이 다른 공간을 왔다 갔다 하면서 실제로 하는 일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이렇게 해야만 실제로 천도가 되니 피곤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러고 나니 비로소 들고 있던 칼이 사라지고 처녀귀신이 자기의 본모습을 찾는다.

"이제 그대의 그때 모습과 그 자리는 사라졌다. 이제 너의 본래자리인 극락으로 가자꾸나"

 

그리고는 극락으로 인도하여 주었다.

 

모두 한 시간 넘게 걸린 천도재를 지냈다.

 

며칠 후 노비귀신들을 천도시키기 위해 다시 왔다. 그동안 처음으로 푹 잘 자고 자해도 하지 않고 환청과 환시도 깰 때 잠깐 있었을 뿐 편안했다는 것이다. 청년은 물론 누나와 그 어머니도 신기해하며 모두 안색이 밝았다. 이제 남녀 노비귀신들을 천도시켜 줄 차례이다.

 

지장보살님께 염불을 한참 한 후에 "사람으로 태어나 노비로 사는 것도 서러운데, 주인의 아들(청년의 당시 신분)에게조차 짐승취급받으며 끔찍하게 죽었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이렇게 시작하였다.

 

"실컷 괴롭히다가 화염지옥으로 끌고 갈 거야!" 자기들이 청년의 손에 불타 죽었으니 똑같이 복수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의 몸은 불탄 시신과 같이 끔찍한 상태였다.

 

"지옥에 가더라도 그대들은 죄가 없으니 좋은 모습으로 가야 될 것 아니냐, 그러니 몸을 깨끗이 씻으시오"

몸을 씻도록 하고 준비해 둔 의복을 양반들이 입는 옷으로 화의(化衣)시킨 후 입혀주었다. 사실 노비들이 마음속 깊이 원하는 것은 바로 주인양반이 입는 옷이다. 바로 신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옷을 입고 나자 감격스러운 듯이 큰 소리로 말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이런 옷을 입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원한이 맺힌 노비귀신들은 예전에도 이런 경우와 비슷하게 여러 번 천도시켜 주었지만 순박하다.

 

"이 청년이 너희들에게 깊이 사죄하고 참회하니 이만 여기서 그대들도 벗어나거라!"

 

"이 사람에게도 광명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비귀신이 이 말을 한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광명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래, 사람이 지배욕에 눈이 멀고 잔인한 마음을 가지면 이렇게 끔찍한 악업을 저지르고 마니 그대들은 다시는 그 광명이 사라지지 않도록 유념하세요!" 그러고는 극락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이 청년은 자기 영혼이 전생에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천도재를 지내고 대화하는 동안 하나하나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사실 이 청년은 다시 한번만 더 태어나면 사이코패스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금생에 착한 심성이 위로 올라와 나타내고 있었다. 이것은 비로자나불이 이 생명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기회인 것이다. 물론 악심은 잠재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다. 참회하면서 이 악심을 없애야만 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 일을 하면서 인과법을 늘상 보면서 경험하고 있지만 이렇게 몇 생에 걸쳐 악업을 짓고 그다음부터 몇 생에 걸쳐 벌을 받는 형태는 흔치 않다.

 

누나가 천도가 끝난 후 "문수보살님이 중간에 떠올랐어요"라고 말한다. 누나의 수호신이면서 동생을 내게 데리고 오도록 해 준 보살님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아들의 기적 같은 회복을 보고 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종교의 허구성을 깨달았다. 종교는 신과 신앙을 인간의식을 중심으로 조직화, 체계화시킨 믿음체계일 뿐, 실제 신과는 별 관계도 없다. 기껏해야 인간이 신을 자의적으로 상상한 후 숭배하고 믿을 뿐이다. 그래서 자가발전에 지나지 않는다. 즉, 신과 관계없이 자기가 믿고 자기가 힘을 내는 것이다. 물론 그것만이라도 믿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근하게 가지고 있는 기대에는 한창 미치지 못한다.

 

지금 시대의 종교에는 신이 없다. 인간집단만 남아서 신을 핑계로 사교클럽이 된 것이다. 물론 서양의 종교는 중세 마녀사냥 때 이미 하나님, 예수님이 떠나버렸다.

 

신을 영접하려면 자기 자신이 완전히 마음이 비워지고 태양보다 더 밝아져야 한다. 그런데 이럴 때는 정작 신이 자기에게 크게 필요 없으니 이 모순을 어떡하지? 바로 <You are God?>이다. 불법(佛法)의 가르침에서 비로소 이 모순이 해소된다. 불법은 실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