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집안에 아들 하나를 낳고 쫓겨난 할머니가 계세요"
이 말이 떨어지자 아주머니가 소름이 쫙 끼친다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란다.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시댁 할아버지 제사상에 할머니 밥그릇이 하나 더 올라가요"
지금까지 성당에 다니고 있는 독실한 천주교신자인 이 아주머니로서는 이럴법하다. 이혼을 앞두고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모태신앙조차 포기하고 나에게 왔으니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럽게 지냈을까 생각하면 딱하기도 하다.
"남편 할아버지는 얼굴이 곰보인 할머니를 만나 아들 하나는 낳고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었는데, 그 부모(증조부모)가 이 할머니와 아들을 강제로 내쫓고 동네 잘 사는 집안의 여자와 강제로 결혼을 시켰어요. 그리고 쫓겨난 할머니와 어린 아들은 거리에서 빌어먹다가 굶어 죽었어요. 이 할머니 귀신이 와서 이 후손들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데, 이 집안 자손들이 하나같이 부부로 한 집안에 살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다행히도 이 아주머니는 그런 사연을 시어머니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니 내 말을 듣고 놀랄 수 밖에. 내가 어떻게 그걸 알았느냐 말이다.
남편 집안은 한마디로 말하면 콩가루 집안이었다. 남편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들 모두 별거하거나 대부분 이혼하고, 마지막 남은 시누도 이혼준비 중이며, 천주교인 아주머니 자신조차 수십 년 참고 살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해 이혼준비 중인 것이다.
"내가 일을 해주면 시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혼하지 않을 것이고 아주머니 역시 마음 편히 살게 될거요"
그래서 당연히 이 할머니 영가를 천도시킨다.
"이제 그만하면 되지 않았소! 이 집안 후손들을 모두 망쳤으니 말이오"
"그래도 내가 이 집안 자식들을 죽이지는 않았잖아!"
할머니의 이 외마디 외침이 그동안 쌓인 한을 대변한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이혼시킬 거야!"
"이 집안에 시집온 같은 여자로서 이 아주머니가 불쌍하지도 않소?"
"이 집안은 동물집안이야, 사람은 숨쉬기 힘들지..."
아주머니가 이 할머니 영혼이 하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린다. 할머니 역시 이 아주머니를 딱하게 보기 시작한다. 아주머니 말로는 시집와서 이 할머니 사연을 시어머니로부터 전해 듣고 불쌍하게 생각하며 늘 마음에 걸려왔고 성당에서 기도를 해주었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 이 할머니의 영향을 직접 온몸으로 받고 있었으니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독했어야 했어.."
그 당시 자기가 악착같이 독하게 버티며 쫓겨나지 않았어야 했는데, 착하고 순해서 그냥 순순히 쫓겨난 것을 한탄하는 중얼거림이다.
"그래요. 순한 것보다 독한 것이 좋지요. 그만큼 정신력이 강하다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독(毒) 한 것을 넘어 악(惡)해져서는 안 되지요. 독한 것은 고난을 넘어 행복함을 가져오지만 악한 것은 결국 자기나 타인에게 큰 불행을 가져오니까요. 할머니는 그 무서운 한(恨)으로 인해 독해졌지만 이제 악해지려고 하고 있어요. 그러니 여기서 그만 멈추어야 합니다."
할머니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자, 할머니. 이제 이 고통스러운 세상을 벗어납시다"
할머니를 저 세계로 인도하자 아주머니 안색이 달라진다.
"수십 년 묵은 체증이 싹 가시는 것 같이 마음이 뻥 뚫렸어요, 신기해요. 선생님"
할머니 영혼이 사실 이 아주머니에게 빙의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하다.
며칠 뒤 그렇게 이혼하겠다고 온 집안에 난리 치던 시누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갑자기 조용해졌다는 것이다. 모두 할머니 영혼이 부추겨서 생긴 현상이니 당연하다.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던 사람을 아무런 큰 잘못도 없이 단지 조건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강제로 내치는 것이 얼마나 파괴력을 보여주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남편 증조부모의 한 순간 잘못된 행동이 후손들을 모두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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