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갑자기 난치병이 생긴 딸이 하이붓다로 찾아오다.
지난해 나에게 방문해 천도재를 지낸 사람들을 회고하던 중 이 일이 유난히 강하게 떠올랐다.
충청도에 사는 30대 초반인 이 여성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신혼생활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60세도 되지 않은 아버지에게 큰 병이 생긴 것이다.
병원에서 나온 진단은 백혈병 종류하고 했는데 지금은 수술도 어렵고 완전한 치료도 되지 않는지라 언제든지 갑자기 악화되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리가 어지럽고 온 몸에 힘이 빠지며 어떤 알맹이 같은 것이 온몸을 돌아다니는데 피부 위로 그것이 불뚝불뚝 튀어나오는 것이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원인도 정확한 병명도 치료도 되지 않는 이상한 난치병인 것이다.
이전까지 이 신혼여성의 아버지는 평소 병원 한 번 안가본 건강체로 살아왔는데, 다른 병도 아니고 그것도 난치병 내지 불치병이라니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인 셈이다.
아버지 역시 우울하고 울면서 하루하루 공포심으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평소 보이지 않는 세계, 영적 차원을 믿고 알던 이 여성은 아버지 난치병의 원인이라도 알고 싶어 찾아왔던 것이다.
수명이 다 된 아버지를 염라대왕에게 데려갈 저승사자가 와 있었다
내 눈앞에 앉아있는 이 딸을 통해 아버지를 두루 살펴보았다.
정체불명의 난치병의 숨은 원인은 바로 아버지의 수명이 다한 것이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개개인의 유독 수명이 짧은 단명의 운명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제 타고난 수명이 다한지라 몸을 버려야 되기 때문에 그에 따라 자연히 의술로 치료되지 않는 난치병이 생긴 것이다.
즉, 아버지 영혼이 몸과 인연이 다 되어 우주의 법칙에 따라 생겨난 질병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 죽고 나면 아버지 영혼을 염라대왕에게 데려갈 저승사자도 와 있었다.
대단히 수준이 높은 신령급 저승사자인데 그 몸이 광명을 발하고 있다.
성품이 대단히 엄격하고 위엄을 풍기고 있다.
이렇게 수명이 다 되어가고 치료되지 못하는 난치병 내지 불치병에 걸려 있는 와중에 이런 저승사자까지 와 있으니 도저히 살아날 방도도 없고 가능성 0% 인 것이다.
그런데 이 딸이 아버지를 조금만이라도 더 살게 해달라고 너무나 간절하게 애원했다.
내가 살리기 어려워 천도재를 지내도 안된다고 누차 얘기했지만 도무지 듣지 않고 막무가내다.
더 이상 거절못하고 천도재를 지냈다.
지장보살님과 용왕대신님의 가피로 아버지를 살리고 천도재를 마치다.
내가 지은 경전인 지장의 서(우리말지장경)을 염불 하면서 우선 저승사자를 청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사자님,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물게 이 딸의 효심이 가득한데 이 딸의 아버지를 한 번만 봐주시지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잖소!"
"물론 알고 있습니다만 이 딸의 마음이 지극하지 않습니까? 지극한 정성은 하늘을 움직이는 법이거늘 이 아버지가 더 살든 못살든 그건 하늘에게 맡기고 사자님께서 우선 좀 봐주시지요"
"이 딸은 단순히 도리로서 그러는 것일 뿐이야"
"???......."
그러니까 이 딸이 아버지를 살리려는 것은 단순히 자식된 도리와 의무 때문에 그러는 것일 뿐, 진심은 한참 부족하다는 뜻이다.
"사자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도리로서 아버지를 살리려고 하지만 그 도리를 행하는 마음이 어찌 전부 도리뿐이겠습니까?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니까 도리를 찾는 것이지, 아니면 내가 거절하는데도 굳이 본인이 힘들게 번 아까운 돈으로 이렇게 지장보살님께 재를 올리지는 않을 거지요"
"...... 그래도 안돼"
"그렇다면 이 딸에게 진심을 갖출 기회를 한 번 줘보시는 것도 어떻습니까? 도리를 넘어설 기회조차 한 번도 주지 않는다면 저나 이 딸이나 사자님이나 지장보살님 부처님 모두 안타까워하지 않을까요?"
".......... 그럼 기회를 한 번 주지!"
"감사합니다. 아마 이 딸은 사자님이 주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겁니다"
"스님이 잘 가르쳐주시오"
그러면서 저승사자가 이 딸에게 직접 말씀해 주신다.
"아버지와 그대를 둘로 보면 안 돼, 아버지를 나로 보고 나를 아버지로 보고 기도해 나가도록 해라!"
나에게 마지막 말을 한다.
"나는 나중에 오겠소"
대단한 저승사자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을 단숨에 끄집어내 우주적 차원의 진리로 비판하며 나를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 기도를 알려주시기까지 한다.
이런 저승사자는 나와 말이 통하는지라 무시무시한 법담(法談)을 술술 나눌 수 있어 참 기분이 좋다.
나는 답답한 인간세상에서 가끔 이렇게 숨통을 틔운다.
법담이 왜 무시무시하냐면 말 한마디라도 진리와 이치에 어긋난다면 그냥 깨져버리고 지는 것이기 때문에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담이 단순히 경전구절을 읊어대듯이 뜬구름 잡는 관념적인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을 담아서 진리에 녹여내야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성속불이(聖俗不二) 차원이라야 가능하다.
그래서 법담은 자기 존재 전체를 가지고 내기하는 즉설주(卽說呪)인 것이다.
그리고 이번 경우는 아버지의 목숨을 놓고 그 딸을 매개체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한 치도 논리에서 밀리면 안 되므로 천도재 시작부터 나는 삼매에 들어 있었기도 했다.
저승사자가 마침내 떠났다.
저승사자는 힘으로 억지로 보낼 수 없는 존재다.
오로지 우주의 힘인 법력을 품고 있는 진리로서 저승사자의 정당한 논리와 그 마음을 파고 들어가 스스로 물러나도록 해야만 되는 법이다.
그로부터 100일 후 아버지의 모든 증세가 깨끗하게 사라졌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예전과 똑같이 건강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신기했어요, 선사님. 아버지 목숨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승사자님의 기도 가르침을 잘 기억하고 그렇게 기도할게요"
이 딸의 환희심에 찬 말을 듣고 천도재를 잘 지냈다고 생각된다.
이 천도재 배후에는 지장보살님과 용왕대신께서 함께 해주셨다.
그리고 이 딸은 나중에 훌륭한 대보살이 되어 중생을 구제하려고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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