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영혼이야기

영혼은 보상금 만으로는 안된다.

지공선사 2024. 1. 6. 21:51

아침에 기도를 하고 있는데 어떤 중년 아주머니 한 분이 아들로 보이는 장애아를 데리고 벽을 통해 쓰윽 들어오는 것이다. 즉, 귀신인데 누구냐고 물으니 아무말도 없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잠시 후 사라졌다.

 

그날 오후 사무실 근처 동네에 사는 나이 70이 넘은 장oo 라는 할아버지 한 분이 상담을 하러 오셨다. 

 

눈앞에 불빛이 번쩍거리고 잘 보이지도 않으며(광시증), 최근에 목 뒷덜미에 서서히 통증이 퍼지고 있어서 서울대 병원에서 눈 수술을 한 지 3개월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도 나아지는 것이 없고 3개월 후 다시 재수술을 해야할 것 같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런데 옛날 할아버지라서 그런지 몰라도 눈이 이런 것이 그냥 단순히 눈 문제가 아니라 어떤 귀신 같은 것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다. 그리고 꽤 잘 살았는데 자식들이 사업한답시고 다 말아먹고 현재 곤궁한 처지였다.

 

그래서 여기저기 무당을 찾아다니며 물어봤더니 조상 귀신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뭔가 그 말이 못미더워서 나에게 또 물어보러 오신 것이다.

 

가만히 보니 아침 기도할때 나타난 그 아주머니와 다리를 제대로 못쓰는 그 장애인과 그리고 어떤 어린 갓 태어난 아기가 같이 있는 것이 보였다.

 

단순히 이 귀신들 때문이라고 이야기 해드려봐야 역시 믿지 못할 것 같았다. 원래 여기저기 물으러 다니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그 가운데 진짜 정답을 들어도 그냥 지나치는 문제가 있다. 

더구나 여러 무당들로부터 한결같이 조상령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들었으니 할아버지로 하여금 믿게 하려면 직접 그 귀신들을 몸 속에 불러들여 귀신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 혹 가족 가운데 직업군인이 있나요?"

 

할아버지는 놀란 듯이 말했다. "응, 큰 아들이 군인이었어. 직업군인 생활을 하다가 전역했지"

"자, 할아버지. 할아버지 눈을 그렇게 만들고 자식들이 하는 일마다 안 되게 만드는 귀신들이 있는데 직접 대화해 보시겠습니까?"

 

할아버지는 나의 대뜸한 이말에 뭔가 싶은 표정으로 그러겠다고 했다. 내 눈이나 우리 자식들이 왜 이런지 그 동안 얼마나 갑갑했을까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귀신을 몸 속에 불러들여 의뢰인과 직접 대화를 시킬 때는 그 귀신의 말이나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 특히 원한령의 경우는 대단히 위험한 경우가 있다. 원한령의 한이 서린 말이 전달될 때 상대방이 대단히 큰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oo보살의 도움을 받았다. 주문(진언)을 외우며 oo보살 몸 속으로 아주머니 귀신을 불러 들였다. 나는 귀신에게 대뜸 물었다.

 

"넌 누구며 왜 이 할아버지 눈을 망가뜨리고 자식들을 해치느냐! 기회를 줄테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봐라!"

 

그 귀신이 나를 쳐다보며 푸념을 먼저 한다.

 

"에이 씨, 왜 이리 귀찮게 하냐!"

 

"아침에 나에게 왔으니 할 말이 있어서 먼저 온 것이 아닌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할아버지에게 털어놓아라!" 

귀신을 노려보며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영감 아들이 내 아들을 죽였어! 장애아인 불쌍한 내 아들을.."

 

"그럼 아들에게 복수하지 할아버지 눈은 왜 이렇게 만드냐?"

 

부자 혈연의 인연에서 과보를 같이 받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혹시 귀신이 아들에 대한 원한과는 별도로 할아버지에게 별도의 원한이 있는건지 아는 것이 필요했다.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네가 낳았잖아!" 하며 큰 소리친다. 다행히도 할아버지에게 부모라는 이유 이외에는 다른 원인은 없었다.

 

이름을 물으니 자기는 이o순이고 아들은 박o준이라고 한다. 

 

나는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그런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할아버지 큰아들이 군인이었을때 17년전 부천에서 술 마시고 오토바이를 몰다가 장애아 한 명을 친 적이 있었다. 그 때 350만원 보상금을 주고 합의를 끝냈는데, 얼마 뒤 그 아이가 죽고 뒤이어 이 아주머니가 죽은 것이다. 할아버지는 아이와 아주머니가 죽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한참 지나서야 알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합의하고 보상금을 주었으니 그것으로 깨끗하게 끝날 줄 알았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충분하게 보상금까지 주었잖아요. 아주머니 아들이 죽었다고 할아버지 아들이 따라 죽을 수도 없는 일이고 또 그 동안 할아버지 가족들을 충분히 괴롭혀 왔으니 이제 그만 한을 푸는 것이 어떻소, 그럼 내가 아주머니와 불쌍한 아들을 극락으로 보내 드리리다. 아주머니도 죽은 아들을 이렇게 오래 끌고 다니며 사람을 괴롭히는 나쁜 짓을 하는 것이 괴롭지 않소? 

불쌍하게 죽은 아들이니 좋은 세상으로 데려가서 잘 살게 해주는 것이 엄마의 도리가 아니겠소? 아주머니가 살아 있을 때 죽어서 이렇게 영혼이 계속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해봤을 것 아니오? 마찬가지로 다시 태어나서 귀신이 되어서 산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큰 악업을 짓는 것이니 다시 태어나서도 불행하게 살게 될거요."

 

아주머니의 화난 얼굴이 누그러지며 잠시 조용해졌다.

 

"자, 할아버지 이 아주머니와 아들에게 진정으로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해주세요. 그럼 아주머니가 이 자리에서 한을 바로 풀 것이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감정이 쌓여 있었다. 사고 보상을 충분히 해주었는데 이렇게 내 눈은 물론이고 우리 자식들을 망칠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할아버지, 아무리 보상금을 충분하게 주어도 생명의 값어치만큼은 안 되잖아요. 입장 바꿔 생각해 보세요. 보상금을 받고 그 다친 아들이 나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죽었으니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감정이 쌓이는 것은 인지상정이지 않습니까?

 

할아버지는 감정이 쌓인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어서, 이 아주머니 귀신이 화가 크게 났다. 진정으로 미안하다는 사과를 듣고 싶었는데 ...

 

그래서 불상 앞에 앉아 요령을 흔드니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어리석음을 동시에 깨는 법문이 내 몸에서 천천히 흘러나오며 법성게가 이어진다. 법성게로 한(恨)푸리를 한 것이다.

 

"부처님과 진리의 성품은 무한히 둥글고 밝아서 그 가운데 인간의 한(恨)은 아무리 날카로와도 설 곳이 없도다. 그대들도 본성이 부처이니 마음 속의 한은 잠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파도의 거품이로세. 이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도 영원한 사실이니 이제 한을 맺는 것도 없고, 한을 푸는 것도 없는 평안의 적멸을 찾도록 하세. 한을 한개 풀면 두 개가 맺히고 두개를 풀면 네 개가 쌓이니 그 자체가 한이요,

한 그 자체가 진정 우리의 한이로다.... 아 ! 슬프도다, 한이 인연을 만드니 인연 또한 한이 되고 마네....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무명무상절일체..."

 

잠깐 동안의 구슬프면서도 동시에 기쁜 법문이 끝나자, 모두 알아 들었는지 할아버지 입에서 진정으로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고 아주머니 귀신도 그 오랫동안 맺힌 한을 드디어 풀며 자기와 아들을 극락으로 천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천도재를 하기로 한 전날 저녁에 갑자기 귀신들이 한무리 몰려왔다. 20명쯤 되어  보였다. 할아버지 영혼이 온 집안 식구들을 다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러면서 잘 부탁드린다고 모두 인사를 하고 갔다. 이렇게 생령(生靈 산사람의 영혼)이 무리지어 몰려와 부탁하는 것은 드물게 있는 일이다. 할아버지 가족들이 모두 잘 살게 해다라고 부탁하니 참 ! 산 영혼이든 죽은 영혼이든 어쨌든 나를 알아줘 기분은 괜찮지만 부담이 되기도 한다. 몸과 같이 움직이면 얼마나 좋을까...

 

천도재를 지내고 그 불쌍한 아주머니 모자를 극락으로 보내 드리자 마자 할아버지 눈이 빛이 번쩍이는 현상이 사라졌고, 오랫동안 가져온 뭔가 불편했던 마음이 깨끗이 사라져 맑게 개인 아침햇살 같이 기분 좋다고 싱글벙글 하신다. 물론 자식들이 잘 되게 계속 기도해가고 있는 중이다. 할아버지는 등산을 가시다가 수시로 들르시며 만 원짜리 한 장을 불전에 놓으신다. 천도재 때 너무 적게 드려 죄송하다면서, 그리고는 나중에 자기가 죽으면 자기도 꼭 천도시켜 달라고 미리 부탁하신다.

 

할아버지와 같이 있던 그 아기는 태어나서 채 100일이 되기 전에 죽은 할아버지 아들 영혼이다. 죽은 후 지금은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를 못 떠나고 수십년을 같이 지내고 있는 셈이다. 무척 슬퍼하고 있었다. 그 아기는 뒤에 따로 천도시켜 주었다. 왜냐하면 그 아주머니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영혼이므로 한꺼번에 천도한다는 것은 영혼세계의 예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사고를 내서 상대방이 크게 다치거나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할아버지, 보상금을 주는 것은 기본이고 그 때 그 아이를 위해서 쾌유 기도를 했거나 죽었는지 알아보고 천도를 시켜 주었으면 아무일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영혼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어떤 사고의 진정한 끝마무리는 이렇게 영혼세계까지 정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돈 만으로 생명을 덮을려는 어리석은 이 세태에 좋은 교훈을 주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