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 사는 노총각에게 당귀(무당귀신)가 찾아왔다. 이 노총각이 외롭던 나머지 적적한 방 안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어느 날 촛대를 갖다 놓고 불을 켜더니 과일을 올려놓고 싶은 마음이 들어 과일도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 위에는 풍경을 여러 개 달아 놓았다. 그렇게 몇 개월 하더니 몸이 여기저기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하고 눈도 뻑뻑해지면서 충혈되고 뒷골이 댕기며 정신이 멍해지면서 신병증세가 나타났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나를 찾아온 것이다.
"무당이 되고 싶소?"
"무당이 되어 이 길을 잘 갈 수 있다면 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안하는 것이 낫겠지요"
그래서 당귀들을 저 세계로 보내기 위한 천도재를 지낸다.
"그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이 총각을 왜 찾아왔는가?"
"나와 가는 길이 비슷한 것 같아서 왔지"
"왜 이 총각을 괴롭히는가?"
"아, 물을 떠올리지 않잔아"
귀신에게는 과일이나 떡보다는 물 한 그릇 공양받는 것을 더 중요시 여긴다. 물속에는 많은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각이 드디어 청수공양을 하려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멈추고 내게 온 것이다.
"그대와 가는 길이 비슷하다고 하지만 사람이 다른 걸. 그대는 그대의 길이 있고 그대가 가야 할 곳이 있지. 이 총각은 이 총각이 가야할 길이 있고 갈 곳이 따로 있지.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일 뿐 똑같은 것이 아니야"
"이 총각이 나를 부르고 좋아했단 말이야"
"불러서 왔으면 가라고 하면 또한 가야지. 왜 부를 때의 말만 듣나?"
"이제 물도 올리려고 하는데, 다 된 밥에 왜 재를 뿌려?" 여자 무당귀신이 신경질을 부린다. 신경질을 부릴수록 나에게 지게 되어 있다.
"한 솥에 밥이 다 되어도 각자의 분량만큼 각자의 숟가락으로 먹는 법, 그대들과 이 총각은 다르다. 진정 먹을 수 있는 밥이라면 내가 끼어들 기회조차 하늘에서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야"
"너 외롭지 않아?" 당귀가 총각에게 유혹하듯이 말한다. 총각은 묵묵부답이다.
"너도 외롭지? 그대가 외로워서 이 총각에게 온 것 아닌가? 외롭지 않다면 이 총각이
불러도 올 필요가 없지 않은가? 각자 똑같이 외롭지만 외로움을 달래는 것 역시 다르다"
"그럼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이제야 당귀가 자기 자신에게로 마음을 돌린다.
"고향을 떠나 있으니 외롭지, 다시 고향으로 보내줄게"
착하고 성실한 총각의 마음씨에 끌려왔던 당귀인지라 그렇게 악질 당귀가 아니다. 지장보살님께 청하여 극락으로 인도하였다. 예전에는 종종 당귀를 혼내면서 천도시켰지만 지금은 힘도 거의 쓰지 않고 간단하게 몇 마디 말로 다스린다. 천도라는 말도 잘 쓰지 않는다. 사람이든 귀신이든 자기가 각자 있어야 할 곳에 있도록 해 준다.
자기 자신과 비슷하게 보인다고 똑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오류가 팽배해 있다. 한두 가지가 비슷하다고 생각되면 사람이든 귀신이든 무턱대고 달라붙으려고 집착을 한다. 비슷할수록 차이점을 잘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묘관찰지(妙觀察智)이다. 창의성도 묘관찰지에서 나온다.
요즘 젊은이들이 생활기반을 잡지 못하고 마음이 붕 떠서 도를 닦는다거나 종교생활 등을 하는 바람에 그 틈으로 귀신들이 침투하여 고통을 많이 당한다. 빨리 결혼하여 가정을 꾸려나가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말이다. 이 총각도 나를 만나서 다행이지, 자칫 팔자에도 없는 무당이 될 뻔하였다. 당귀와 종교령(종교단체의 귀신)은 한 번 물면 당사자가 죽을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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